검은집 예술문화공간
글,이미지 민지희 / 사진 박영채
*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검은집
어둠을 쌓고 사색하다
이 공간은 본래 건축을 통해 사색하는 것을 목표로 시작되었다. 으레 건축에서 필요로 하는 실용성, 효율성보다도 건축공간 체험 그 자체가 주는 다양한 감각과 감정들을 인지할 수 있도록 공간을 조성했다.
제주의 토속 건축 중 하나인 신당들을 보면 인위적인 건물을 세워 올리지 않고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의 질서를 섬세하게 읽어 공간을 조성하는 특징이 있다. 주변의 자연과 사물들로 상서로운 영역을 만들다 보니, 되려 일상적인 자연과 사물이 생경하게 느껴지곤 하는데 이처럼 일반적인 것들을 낯설게 하고 되짚어 생각해 보도록 한다면 사색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건축을 구성하는 요소들, 예를 들면 담, 창문, 문, 기둥, 지붕, 데크, 가구, 조명 같은 것들의 의미들을 다시 생각하고 본래의 용도나 의미들을 해체하여 낯설게 인식될 수 있도록 했다.
내부의 공간은 최소한의 채광창을 두어, 어둠이 내부에 켜켜이 쌓이도록 했는데, 이 때 채광창은 바닥에 놓아, 어둠이 위쪽으로 쌓이도록 했다. 천정이란 구조 부재들이 맞물리면서 힘이 작동하나 실용적으로 쓸 수는 없는, 단지 어두운 공간으로 다양한 문화권에서 영적인 존재가 있다고 여겨지는 영역이다. 이 점을 차용해 큰 보들을 중복해 배치함으로써, 그 사이에 짙은 어둠을 만들고 텅 빈 지붕 밑 공간은 사람의 시선이나 상념들이 머물 수 있도록 했다.
이 건축의 주 외장재료인 탄화목은 검은색을 만들기 위해 검은 도료를 칠하는 것과는 다른 것으로, 목재를 태움으로써 결과 함께 드러나는 색으로 재료가 변화되어 온 과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로, 이 건물은 어느 시간대에도 밤 같은 상태를 유지한다. 날씨가 화창한 날에도 이 미술관은 언제나 밤의 시간대처럼 감성적이고 내면을 돌아보게 하는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제주와 빌레
협재에 정박하다
제주는 이국적인 풍경과 온난한 기온으로 인해 잘 알려진 관광지 이자, 고립된상황 속 거친 풍토와 비극적인 근대의 역사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 명과 암이 공존하는 지역의 기시감을 이 공간의 낯선 체험을 통해 구체화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공사 직전 예상치 못하게 빌레(너럭바위의 제주말)가 발견되었다.
빌레를 기준으로 삼아 건물 사이의 공간의 질서를 새롭게 정의하게 되었다. 빌레는 제주의 대지 그 자체로 상정했다. 빌레를 제주 전 지역의 대지와 연결되어 있는 장소로 인식하고 건물의 직선과 콘크리트 데크로 가두어 땅을 밟는 것의 의미를 새로이 하고자 했다. 도로보다 낮은 레벨에 형성된 빌레의 높이에 맞추어 건물은 바닥을 더 낮추었고 건물의 기초를 바위에 안착시켰다.
각 건물의 개구부는 빌레를 중심으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검은집의 깊은 처마는 빌레를 배경으로 공연 등을 즐길 수 있게하고, 벽은 사선으로 각도를 주어, 해가질 때 노을의 빛이 벽을 타고 흐를 수 있도록 열어두었다. 중정의 입구와 옥상으로 가는 두 입구는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데, 두 입구로 가는 데크를 마련하지 않고 빌레로 내려와서 접근하게끔 배치하거나, 계단을 끊긴 듯 설정하여 마치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가는 듯한 느낌을 강조했다.
이 건물의 형상을 결정한 주된 개념은 ’배’ 였다. 주 1동과 2동이 이루는 수직축은 바다를 향해 있고, 비양도를 바라보고 있다. 주 축을 따라 수공간과, 단독주택이 살짝 축을 달리하며 물고기처럼 붙어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옥상에 있는 난간은 섬-육지를 드나드는 페리의 갑판에 있는 난간의 이미지를 차용했다.전체적으로 대지를 바다로 하여 비양도로 나아가는 듯한 모습이다
*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중정
공간으로 기억하다
중정은 ‘우아한 이별을 위한 공간’ 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설계된 공간이다. 중정은 보통 비어있는 공간을 활용해 여러 가지 옥외 활동을 하는 마당이거나, 혹은 빈공간 자체를 사색하는 역할이나 상징적인 역할을 한다. 처음엔 이 공간을 빈 공간을 통해 사색하는 중정으로 계획했다.
그러다가 문득 어떤 방으로 이 중정이 가득 차, 팽창하는 이미지를 떠올렸다. 팽창하는 방으로 인해 사람이 점점 반대편 벽으로 밀려나는 상상을 하게 되었다. 천정의 개구부와 녹슨 철판으로 된 방 사이에는 아주 좁은 틈만 있어, 그 틈으로 빛이 통과해 철판의 표면을 비추고 비가 오면 방이 젖어들기도 한다. 바깥과 연결되어 있어도 빠져나갈 수는 없고 올려다보면 맑은 하늘이 얇은 선으로 보이게 된다.
만날 수 없는 먼 곳의 존재를 상상하는 일처럼 그 내부를 들어갈 수 없는 거대한 방의 표면을 따라 중정을 돌면서, 그 표면을 읽거나, 철판 너머의 보이지 않는 공간을 상상하게 된다. 철이라는 재료의 묵직한 울림은 마치 공간과 함께 공명하는 듯하다.
이것은 한 개인의 우아한 이별을 하기 위한 장소로 시작되었지만, 더 나아가 제주도에 끝내 도착하지 못한 단원고 학생들과 4.3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고자 했다.
한 변이 4m이고 높이가 6.5m인 철판조형물은 이음새없이 만들기 위해 육지에서 제작하고 완전히 조립되어 배로 운반되었다.